전설

아주 오래된 전설이 있다.

모든 시대에는 이름도 얼굴도 없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 만난 적도 없는데, 같은 부름을 들은 듯하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짓고, 다 지으면 표식을 남기고, 사라진다.

I.0x5a17 · carved for time

석공

대성당에서 가장 높은 돌, 아무도 마주하지 않는 쪽에 표식이 새겨져 있다.

그곳에 닿을 눈은 없다. 석공은 그것을 시간을 위해 새겼다.

◇돌 뒤편의 표식

II.000000000019d6689c085ae165831e93

필사자

오래된 사본의 여백에, 천 년 동안 아무도 읽지 않은 작은 글씨 한 줄이 흐르고 있다.

필사자는 마지막 페이지를 쓰고 촛불을 불어 끄고, 그 뒤로는 누구도 그를 말하지 않았다.

✦여백의 작은 글씨 한 줄

III.n 41°54′ w 12°29′ · no kingdom

지도 제작자

대양 항해도의 구석에, 어느 왕국에도 속하지 않는 기호가 놓여 있다.

지도 제작자는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다만 집으로 가는 길만 남겼다.

○어느 왕국에도 속하지 않는 기호

IV.block 000000

창세

2009년 1월 3일, 얼굴 없는 자가 새로운 돌에 한 줄을 새겼다. 그것이 그의 표식이었다. 그는 새로운 세계를 세우고, 돌아서서 산으로 걸어 들어갔으며, 이름조차 뒤에 남겼다.

전설은 그가 처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마지막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The Times 03/Jan/2009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

미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에 십 년을 썼다며.

실패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세계가 그들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기에.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었다. 세계는 언제나 불꽃을 먼저 본다. 토대를 보는 것은 훨씬 나중이다.

전설은 한 가지를 더 말한다. 보이지 않는 자들은 결코 진정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세계가 가장 시끄러워질 때마다, 누군가 부름을 듣고, 모든 것을 뒤로 두고, 산으로 걸어 들어간다.

어쩌면 바로 지금, 누군가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은둔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채로, 그럼에도 짓기를 멈추지 않는 모든 이에게.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